'개성관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1.14 개성관광 정보. 개성음식과 볼만한곳.
  2. 2007.12.21 개성관광 정보.
아래는 개성관광에 대한 기사입니다. 정말 더 늦기전에 꼭한번 가보고싶은 개성관광여행인데 자꾸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하는군요...



소박한 선폭(仙瀑), 박연

박연폭포는 개성의 대표 아이콘이다. 선죽교와 더불어 개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 황진이·서경덕과 함께 송도 3절 중 하나요, 금강산 구룡폭포,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3대 명폭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직접 본 박연은 ‘의외로’ 소박했다. 여름엔 폭이 7~8m씩 된다지만, 이맘땐 수량이 줄어 그 반에도 못 미쳐 보인다. 설령 물이 많다고 해도 높이가 37m에 불과(?)하다. 장쾌한 맛으로 치자면 50m짜리 구룡폭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신 박연은 고아(高雅)하다. 어디 한 곳 감기는 곳 없이 곧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깨끗하고 단정하다. “구룡이 성폭(聖瀑), 대승이 신폭(神瀑)이라면 박연은 선폭(仙瀑)”이라는 안내원의 너스레가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박연을 끼고 산길을 올라 대흥산성, 관음사를 돌아보니 오전이 훌쩍 지났다.


옥류관 냉면보다 나은 맛

개성의 중심, 남대문 인근에 있는 식당 통일관에서 ‘13첩 반상’을 받았다. 1인당 방짜 유기 13개 한 세트씩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13첩 반상’이란 표현은 틀렸다. 원래 첩은 반상기 한 벌에 딸린 쟁첩(작은 반찬 접시)을 세는 단위. 밥이나 국그릇, 김치보시기나 간장 종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잘 나가는’ 양반집 밥상이라도 7첩, 9첩이었다. 그 이상은 12첩 수라상뿐이었다. 그나마 12첩의 의미는 딱 12가지가 아니라 ‘12가지 이상’이라는 뜻. 그러니 애당초 그 이상의 첩 상은 있을 수 없는 셈이다. 한데 13첩이란다. ‘족보’에 없는 밥상이다. 거기다 밥·국·김치까지 다 합해 13개다. 첩 세는 법이 틀린 것이다. 그릇 수야 어찌 됐건 음식 맛 자체는 빠지지 않는다. 양념을 많이 안 써 깔끔하고 담백하다. 젊은 서울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다. 이미 금강산에 다녀온 관광객들 중에는 “옥류관 평양냉면보다 낫다”는 말도 나온다. 특이한 건 밥그릇 크기. 남쪽에선 이젠 구경하기 힘들어진, 소위 ‘머슴 사발’이다. 여자 관광객 대부분이 밥을 남겼다.

■일정·비용=새벽에 갔다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 일정이다. 서울 강북에서 버스가 새벽 5시50분에 출발한다. 식비·여행자보험 등을 포함해 1인당 18만원. 버스비 5000원은 별도다. 개인차량 이용자는 임진강역에 차를 세운 후 오전 7시까지 도라산 남측 출입사무소(CIQ)로 와야 한다. 주차장~집결지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구체적인 정보는 현대아산 개성관광 홈페이지(www.ikaesong.com) 참조.

■휴대품=필름 카메라는 가져갈 수 없다. 촬영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디지털카메라는 돌아올 때 북측 CIQ에서 일일이 내용을 확인한다. 개성 거리 등 금지된 사진을 찍었을 땐 카메라를 압수하거나 거액의 벌금을 물린다. 휴대전화나 라디오, MP3도 휴대 금지 품목.

■환전·쇼핑=금강산과 달리 원화나 신용카드는 쓸 수 없다. 달러만 받는다. 북측 CIQ를 통과하면 개성공단 우리은행 지점에서 나와 ‘출장 환전’을 해준다. 장뇌산삼차, 약과 같은 간식거리 1달러 균일. 2005년 시범 관광 때 8달러씩 받았던 개성인삼주는 1병에 12달러를 받는다. 1인당 술 한 병, 담배 한 보루를 포함해 총 300달러 이하의 기념품만 남측으로 가져올 수 있다. 가장 비싼 몽투리(뱀)·해구신 술은 검역 문제로 반입이 안 되니 아예 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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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1만 2000봉이 있다면, 개성엔 삶의 풍경이 있다. 금강산에 이어 지난 5일부터 개성 관광이 이루어지면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늘어났다.

개성은 금강산과는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박연폭포라는 빼어난 풍광과 선죽교라는 역사적 현장만이 전부는 아니다. 금강산을 두 차례 다녀온 일간스포츠 이슈팀의 이방현 기자가 지난 18일 개성 관광을 통해 ‘개성(開城)만의 개성(個性)’을 찾아봤다.

■신호등 대신 보안원이 있다


개성에 들어가면 처음 대하는 곳이 개성공단. 공단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주위를 스쳐 지나가며 개성 시내로 들어서게 된다. 공단 주위는 남한 풍경과 다르지 않다. 신호등이 깜빡이고, 도로 마지막 차선엔 푸른 줄이 그어져 있다. 물론 버스 전용차로가 아니라 자전거 전용차로이긴 하지만, 금강산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성 시내로 들어서면 도로에 신호등이 사라진다. 대신 교통보안원이 보인다. 파란 제복을 입고 새울음소리같은 호루라기로 뜸하게 지나 다니는 차량에 신호를 보낸다. 간혹 관광버스를 앞질러 질주하는 오래된 벤츠도 볼 수 있다.

■사람이 있다

박연폭포로 갈 때와 통일관에서 점심을 먹고 선죽교로 향할 때에는 개성시내를 관통한다. 비록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버스 창 밖으로 내다보는 것은 흥미롭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맨 채 졸랑졸랑 걸어 나오는 아이들. 빨간 목도리와 파란 털모자 등이 인상적이다. 이발소와 미용실에서 창에 얼굴을 딱 붙이고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내다보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아가씨,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종종걸음을 걷는 엄마, 공장에서 나오는 아저씨,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 그야말로 다양한 삶의 풍경이 다 들어있다. 금강산의 1만 2000봉우리만큼이나 다양한 얼굴들이다.


송년회 대신 개성관광을 왔다는 연구원 김유리(29)씨도 “개성 관광의 백미는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이다”라고 꼽았다.

■추억이 있다

개성에서 살다가 1948년에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이기숙 할머니(75)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기 보이는 남대문 옆엔 파출소가 있었는데 아파트로 변했네. 반대편엔 일본이 지은 건물이었는데 그것도 사라지고….”

개성 관광버스 안에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할머니는 어느새 과거로 빠져들었다. 버스에 함께 탄 젊은 북한 안내원(3명)들에게 지난 시절을 들먹이며 담소를 나눈다. 그들을 대하는 안내원들은 생각 이상으로 친절하다. 개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죽교의 빨간 핏자국이 희미해졌어.” 실향민들의 탄식은 흘러간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거리를 지나치며 바라보는 학교와 공장, 백화점, 식당, 아파트, 단독주택은 우리네 30∼40대들에겐 어린 시절의 빛바랜 사진첩 속에 들어있는 60∼70년대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개성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 가슴 속엔 추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


Posted by Dun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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