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1만 2000봉이 있다면, 개성엔 삶의 풍경이 있다. 금강산에 이어 지난 5일부터 개성 관광이 이루어지면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 늘어났다.

개성은 금강산과는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박연폭포라는 빼어난 풍광과 선죽교라는 역사적 현장만이 전부는 아니다. 금강산을 두 차례 다녀온 일간스포츠 이슈팀의 이방현 기자가 지난 18일 개성 관광을 통해 ‘개성(開城)만의 개성(個性)’을 찾아봤다.

■신호등 대신 보안원이 있다


개성에 들어가면 처음 대하는 곳이 개성공단. 공단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주위를 스쳐 지나가며 개성 시내로 들어서게 된다. 공단 주위는 남한 풍경과 다르지 않다. 신호등이 깜빡이고, 도로 마지막 차선엔 푸른 줄이 그어져 있다. 물론 버스 전용차로가 아니라 자전거 전용차로이긴 하지만, 금강산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성 시내로 들어서면 도로에 신호등이 사라진다. 대신 교통보안원이 보인다. 파란 제복을 입고 새울음소리같은 호루라기로 뜸하게 지나 다니는 차량에 신호를 보낸다. 간혹 관광버스를 앞질러 질주하는 오래된 벤츠도 볼 수 있다.

■사람이 있다

박연폭포로 갈 때와 통일관에서 점심을 먹고 선죽교로 향할 때에는 개성시내를 관통한다. 비록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버스 창 밖으로 내다보는 것은 흥미롭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맨 채 졸랑졸랑 걸어 나오는 아이들. 빨간 목도리와 파란 털모자 등이 인상적이다. 이발소와 미용실에서 창에 얼굴을 딱 붙이고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내다보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아가씨,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종종걸음을 걷는 엄마, 공장에서 나오는 아저씨,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 그야말로 다양한 삶의 풍경이 다 들어있다. 금강산의 1만 2000봉우리만큼이나 다양한 얼굴들이다.


송년회 대신 개성관광을 왔다는 연구원 김유리(29)씨도 “개성 관광의 백미는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이다”라고 꼽았다.

■추억이 있다

개성에서 살다가 1948년에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이기숙 할머니(75)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기 보이는 남대문 옆엔 파출소가 있었는데 아파트로 변했네. 반대편엔 일본이 지은 건물이었는데 그것도 사라지고….”

개성 관광버스 안에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할머니는 어느새 과거로 빠져들었다. 버스에 함께 탄 젊은 북한 안내원(3명)들에게 지난 시절을 들먹이며 담소를 나눈다. 그들을 대하는 안내원들은 생각 이상으로 친절하다. 개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죽교의 빨간 핏자국이 희미해졌어.” 실향민들의 탄식은 흘러간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거리를 지나치며 바라보는 학교와 공장, 백화점, 식당, 아파트, 단독주택은 우리네 30∼40대들에겐 어린 시절의 빛바랜 사진첩 속에 들어있는 60∼70년대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개성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 가슴 속엔 추억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


Posted by Dun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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