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여행지 추천 - 2천 그루 은행나무… '비밀의 숲'이 다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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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첫 개방… 홍천 '은행나무 숲'

25년 길러 80그루 결실… "손자 땐 많이 열리겠죠 허허"

10월 중순, 서울 광화문 은행나무는 여전히 짙은 초록이었다. 단풍은 나무의 잎이 그 해의 활동을 마감하면서 시작되는 현상. 문득 체념이 일었다. 속도와 효율의 거대도시 서울이 이렇게 이른 휴식에 관대할까. 그때였다. 강원도 홍천 산골짜기에 있는 2000그루 은행나무숲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리고 하나 더. 묘목을 심은 지난 1985년부터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일반 개방을 하지 않았던 이 비밀의 숲이, 무료로 빗장 열 결심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안개가 자욱했던 지난 월요일, 새벽 댓바람에 자동차를 몰아 강원도로 달렸다. 은행나무 숲의 위치는 강원도 홍천군의 동쪽 끝.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686-4번지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고, 결국 인근 식당 주인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 국가에서, 2010년의 최첨단 인공지능은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진 숲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첫 번째 울타리를 돌자, 숲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다른 수종(樹種)은 단 한 그루도 끼워주지 않은, 5m 간격으로 완벽하게 오와 열을 맞춘 은행나무 2000그루가 중국 진시황제의 토용(土俑)처럼 도열해 있었다.

문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연두와 노랑이 이 황홀한 선분의 양쪽 두 끝점이라면, 그 사이 어느 지점에는 분명히 자기 자리를 갖고 있을 2000가지 색의 파노라마. 저기, 그 파노라마 한복판에서 한 사내가 느리게 움직이며 은행을 털어 줍고 있다. 이 은행나무 숲의 주인. 25년 전 4~5년생 은행나무 2000주를 심은 유기춘(67)씨다. 잠실 야구장 크기 가까운 1만3000평(4만2975㎡) 땅에는 이제 서른 살 남짓 된 건장한 녀석들이 주인의 명(命)을 기다리고 있었다. .

사실, 유씨가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은 계기는 극히 개인적이었다. 25년 전,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아내는 백약이 무효였고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남편은 오대산 자락 광물을 품은 광천수인 삼봉약수의 효험을 들었다. 장기복용의 결과는 성공적. 게다가 덤도 있었다. 아내는 식욕을 되찾았고, 남편은 강원도 내린천 자락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된 것. 마흔두 살이던 1985년, 서울내기 중년 사내는 1만3000평의 강원도 땅을 사들였고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하나 심었다. 기본적으로 한 가마에 80만원을 호가하는 은행 열매 농사가 목적이었지만,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사랑하던 어린 시절 순정도 있다. 왜, 어른 열서너 명이 두 팔을 한껏 벌려야 겨우 잴 수 있다는, 밑동 둘레 14m의 1300년 된 천연기념물 말이다.
Posted by Dun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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