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치악산(雉岳山ㆍ1288m).

한국의 4440개 산 중 이처럼 변화무쌍한 산도 없을 것이다.

짙푸른 소(沼)와 준수한 졸참나무 군락. 자못 고혹한 자태로 돌아앉아 유혹하더니 별안간 수직에 가까운 절벽길로 등산객을 내몬다.

마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지만 매혹적인 흰 빛깔로 화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연백(鉛白ㆍ탄산납 안료)과도 같다. 발암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순백의 색감에 매료돼 그 연백을 짓이겨 썼을 19세기 화가들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서 치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거친 산이지만 그 아름다움에 끌려 단숨에 강원도 원주로 발걸음을 옮긴다.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구룡지구~세렴폭포~비로봉 코스(6㎞)를 택해 1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구룡사에서 첫발을 뗀다. 과연 처음부터 아름답다. 맑다 못해 시퍼런 옥색으로 찬연히 빛나는 구룡소에서는 어린 듯 서린 듯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아침마다 이곳에서 치악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루의 몸단장을 시작할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다.

여기부터 소박미를 자랑하는 세렴폭포까지 닿는 2.1㎞의 길은 '오른다'기보다는 '거닌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가루눈이 곱게 쌓여 밟는 재미가 있는 오솔길 양옆으로 졸참나무, 신갈나무, 생강나무, 물푸레나무가 하얀 예복을 입고 꼿꼿이 도열해 있어 보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은조롱금조롱 떨어지는 세렴폭포(細簾瀑布)는 이름 그대로 바위 위에 말간 발을 드리운 듯 경쾌하다.

가족 등반객이라면 세렴폭포까지 이어지는 왕복 6㎞ 남짓 평탄한 코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산행이 될 듯하다.

하지만 순박한 모습의 치악은 여기까지다. 세렴폭포 옆에 걸린 세렴교를 건너자마자 45도 경사의 너럭바위가 촘촘히 박혀 있는 하늘길이 열리며 '본색'을 드러낸다.

지난주 말 8㎝ 넘게 켜켜이 내린 눈도 녹기는커녕 갈수록 기세를 더해가며 발목을 붙잡는다. 주봉인 비로봉까지 3㎞ 남짓 이어진 험로는 사다리병창에서 절정에 이른다. 바위가 수직으로 선 사다리 같다 하여 붙은 벼랑(병창)길에 눈까지 쌓이자 한 걸음 한 걸음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단단한 등산화 앞꿈치로 눈을 툭툭 찍어 눈길을 만들어가며 그저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오를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풍이 불며 한바탕 눈의 장막이 펼쳐진다. 해발 1100m.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어려움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눈의 장막이 걷히면서 서서히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저 추위에 떨던 나무들도 여기서부터 초연해진다.

앙상한 가지에 바람결 방향으로 촘촘히 눈이 붙자 사슴뿔인양 4배는 족히 두꺼워진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도 단단한 하얀 근육을 있는 대로 드러내 놓고 강건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후에는 하늘로 가는 다리인양 비로봉까지 설산의 고운 외길이 이어진다.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를 뒤덮은 눈의 왕국이 한눈에 들어온다. 칠성탑, 신선탑, 용왕탑 등 3개의 미륵불탑도 정상에서 솟은 듯 우뚝 서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동풍을 있는 대로 맞은 미륵불탑은 유독 한쪽에만 하얀 얼음꽃이 피어 있다. 마치 우아함과 거침을 동시에 품고 있는 치악의 단면을 상징하는 듯하다.

▶원주 치악산 가는 길

#자가용으로 가면=경부고속도로~새말IC~원주 방면(42번 도로)~학곡저수지~구룡주차매표소

#대중교통 이용 땐=원주시외버스터미널 하차~41ㆍ41-1번 시내버스 이용 후 종점 하차

※ 기상 조건에 따라 입산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chiak.knps.or.kr)를 통한 사전 점검은 필수.


Posted by Dun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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